통영 관광) 통영 충렬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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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관광정보

통영 관광) 통영 충렬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입니다.

by 최선아 2019. 9. 14.

 

안녕하세요! 써니입니다 ^^

날씨가 너무 좋아 충렬사를 다녀 와봤는데요

충무비치호텔에서 충렬사의 거리는

도보로 5분입니다.^^

충렬사는 이충무공의 위훈을 기리는 사당

<사적 제236호>입니다.

 

여기가 입구입니다.

왠지 충렬사를 포스팅하려니

좀 경건해지는데요? ㅎㅎ

충렬사는 선조 39년(1606) 제7대 통제사 이운룡이

왕명으로 이충무공의 위훈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입니다.

경내에는 이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비롯하여 내삼문, 중문, 외삼문, 정문, 홍살문 등 다섯 개의 문이 있으며 중문 안에는 향사 때 제수를 준비하던 동재. 서재가, 외삼문 좌우에는 충렬 묘비를 비롯한 6동의 비각이, 외삼문 밖에는 1988년에 복원한 강한루와 유문 전시관 등이 있습니다.

홍살문입니다.

충렬사의 여섯 개의 문 가운데 첫째 문이고 2개의 둥근 기둥 위에 지붕 없는 붉은 살을 열지 지어 박아세웠습니다. 홍전문이라 쓰고 홍살문이라 읽으며 때로는 홍문이라도고 하는 데 정 2품 이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만 세울 수 있습니다.

 

정 2 품은 정 1품, 종 1품 다음으로 높은 품계이며, 품계 서열은 3위이다.

오늘날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서열입니다.

충렬사의 정문이고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군인: 700원

어린이: 500원

 

상당히 저렴한 편이고

참고로 저희 호텔에서 도보 3분 거리의

통영시 박물관은 입장료가

2000원입니다.

박물관에 대한 포스팅 요기~ 있습니다.

https://choisseona.tistory.com/41

충렬사를 들어가는 도입부입니다.

저는 여길 들어가면서 한국의 정원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정갈하면서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

 

저기 앞에 보이는 것이 강한루입니다.

강한루는 제172대 통제사 이승권(이충무공 8대손)이 1840년에 지은 누각입니다.

예부터 충렬사를 찾는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누대에 올라 이충무공의 큰 덕을 되새기며 동백 고목과 더불어 후원의 푸른 죽림을 자주 시제에 올렸던 영남 유수의 수영 누각입니다.

전형적 조선의 팔각지붕 양식으로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익공식 이 층 구조에 아래층 뒤편에는 통용 군인 <영모문>현판이 걸려있으며 이층 누마루는 우물마루에 계자난간을 두르고 연등천장을 하고 있습니다.

 

강한루에서 적은 시가 있어서 적어 봅니다.

강 위의 시 <강한루>

물길 거슬러 신선의 꿈 아렸더니

강한루 다시 올라 흉금을 활짝 연다.

외로운 달 먼 하늘 떠가고

개울물 모두 흘러 깊은 바다로 가는구나.

사람 만나서 옛 땅 물어보고

술 나누는 첫 마름 애닯기도 하여라.

여기 충렬사 있어

찾아온 지 벌써 두 번 째렸다.!

석류나무 반대편에 있는 400년으로 추정되는 고목으로 경상남도 지정 기념물 제74호인 동백나무가 원래 여기서 봐야 하는 나무인데 너무 무지하게 충렬사를 가는 바람에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단풍을 보러 가서 또 보고

초 겨울 12월에는 진홍색 동백꽃을 보기 위해

또 충렬사를 가야겠어요^^

탐스럽게 익어가는 석류

가을을 기다리고 있네요^^

통영 충렬사에는 보호수들이 몇 그루 있는데요

400년이 되어가는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이런 나무를 어디 가서 보겠어요? ㅎㅎ

너무 신기하면서 아름다웠어요

여기 와서 직접 보세요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

유물 전시관으로 가는 길입니다.

너무 고요하고 차분해지는 기분이 좋습니다.

유물 전시관은 1981년 건립하였고

전시품은

어제사제문 : 정조대왕이 하사(1795).

충렬사팔사품 : 명나라 황제가 보냄. (보물 440호)

이충무공전서 : 통제영수군 파총. 정효현의 그림.

통제영수조도 : 통제영수군 파총. 정효현의 그림.

통제영지도 : 삼도수군통제영의 모항(19세기).

총 통 : 지자총통·현자총통

약수 돌거북

전적류 : 충의고적. 명정서당기. 유영사례

우표 : 외삼문 전경

 

유물 전시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총통 2개

현자총통과 지자총통입니다

당시 세계 최강 영국 해군의 함포는 연철로 총구를 만들어 적중률이 떨어졌으나 조선 총통은 주물로 부어 만들어 정확도가 우수하였습니다.

한국의 기술력은 예나 지금이나 참 대단하죠? ㅎㅎ

참 똑똑한 민족들 같습니다 ㅋㅋ

충렬사팔사품 중 귀도와 참도 사진입니다.

명의 수군도독 천린장군이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명황제에 보고하자 명의 신종이 그 전공을 치하하여 보내준 포상 물입니다.

<1966년 문화관광부에서 보물 제440호>

거북선 모형도 보이고요^^

많은 종류를 전시해 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님의 것이라고 하니 더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서 이런 포상물을 보니 정말 존재하셨던 인물이구나 확실히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었어요!

멀리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장관을 이루고 

하늘은 얼마나 청명하던지

이런 날에는 뭘 찍어도 다 아름답지요^^

올라가는 계단에 물이 고여 있길래 찍어 봤습니다.

이 계단의 돌들도 보호수처럼 오래된 돌들이겠죠?

그 세월을 견뎌왔기 때문에

이 사당을 편히 볼 수 있어서

돌에게도 감사함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외삼문입니다.

삼문 가운데 바깥에 있는 삼문으로 앞에는 강한루가 있고 외삼문은 좌. 우의 비각과 잘 어울려 조선 건축의 조형미 빼어난 건축물에 손꼽히며 광복 후에 대한민국 우표의 도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실제로 보면 더 아름다워요~^^

 

중문입니다.

외삼문과 내삼문의 사이에 있는 가운데 문으로

안을 들어서면 동제와 서제가 있습니다.

문의 색감과 질감이 세월을 이야기해주고 있네요.

대표사진 삭제

이렇게 들어가는 입구에 입체감이 있는

그림이 있어요 진짜 보는 거 같아서

살짝 무서웠습니다;;ㅎㅎ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사진도 멋있습니다

한옥을 보는 방법 중에 안에서 밖을 보라고

어디서 본 거 같습니다 ㅎㅎ

여기가 내삼문입니다.

밑의 안내도 말을 그대로 적어 본다면

삼문 중 가장 안쪽의 문이고 단아하면서도 정교한 건축양식으로

(저도 실제로 봤을 때 내삼문이 정말 아기자기하고 단아해 보였습니다.)

조선 중기 삼문 조형의 정화이다. 솟을 삼문으로 신문의 양쪽 초석을 해태로 조각하고 안팎에 활주(버팀기둥) 8개로 지붕의 무제를 받혔는데 각 활주 아래의 석자는 8각 돌기둥이다.

 

통용문인 양쪽 협문을 낮게 만든 것은 몸을 낮추고 삼가는 몸가짐으로 출입하기 위함이다. 익공식 맞배지붕에 겹처마이며 감문의 창방 위를 화반으로 장식하였고 신문 양쪽의 봉황은 연화단청문양으로 조각하여 꾸몄다.

 

제례가 시작되기 전에 현관은 이 내삼문 단하에서 북향립에 따라 집사의 안내를 받아 계단을 오른다. 앞 뜰에는 매년 공의 탄신제 (4월 28일) 때 중요무형 문화재 제21호인 승전무가 시연된다.

 

이 공의 탄신제 때 오시면 승전무도 볼 수 있다니

그때맞춰서 가보시는 것도

좋은 볼 거리 같습니다^^

해태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을 지키고 있네요!

동재입니다.

향사를 앞두고 헌관(제관)과 집사들이 미리 연기에서 몸과 마음심을 깨끗이 하고 제복을 차려입는 곳으로 향사를 끝낸 후 여기에서 음복을 한다고 합니다.

김 경 제51대 통제사가 맞은편의 서제와 동시에 건립하였다. 동. 서제의 마당을 중정이라 하는데 매년 4월 28일 찬신제 때에는 여기에서 승전무가 헌무 된다고 합니다.

 

동제에 적힌 <주련>의 뜻은

맹산초목지: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알고

서해어룡동: 바다에 맹세하니 고기와 용이 감동한다

이렇게 적혀있네요

드디어 정당에 왔습니다!

 

정당은 민족의 수호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령에 제사를 올리고 공의 정신과 위훈을 만대에 기리기 위하여 제7대 통제사 이운룡이 선조(제14대)의 명을 받아 세웠습니다. 이충무공의 한 분의 위패를 모시고 역대 통제사가 약 300년간 제사를 받들어 온 가장 신성한 장소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맞배지붕으로 1606년에 창건하였는데 정당의 후원은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기와지붕의 용마루에 새긴 주역팔괘는 음양의 조화와 만물의 화생하는 역의 원리를 담고 있으며 제의는 정통 유교의 법 식을 고수합니다.

 

1895년 통제영이 폐영되어 관급이 끊어지고, 경술국치(1910년 한일병탄)을 당하여 제사를 받드는 주체가 없어지자, 이곳 지방민들이 기미년 독립만세운동(1919)을 계기로 충렬사영구보존회(현: 통영충렬사의 전신)를 결성하여 제향을 맥을 이어왔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왜경이 장군의 위패를 칼로 부수고, 삼문의 태극문양에 덧칠하여 일장기로 바꾸고 또 제사를 올리지 못하도록 정당에 못질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고 합니다.ㅜㅜ

 

1945년 광복을 맞아 이승만 대통령,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을 필두로 송진우, 여운형, 신익회 등 많은 광복 지사들이 환국 참배하여 건국의 결의를 다진 유서 깊은 사당이며 노산 이은상 선생이 국역 편찬한 '이충무공전서'의 산실이기도 하다.

 

통영의 충렬사 정말 뜻깊은 곳이죠?

이순신을 아는 나이의 자녀들에게는 필수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정당을 향하여 중앙 좌측의 주련은 명나라 진린 도독이 이충무공을 찬양한 어록의 한 구절입니다.

<주련>

고대 중국의 창조 신화

경천위지지제: 천지창조 때 혼돈된 천지를 씨줄, 날줄로 짜세운 능력

육일보천지공: 하늘에 뚫린 구멍을 메우고 해를 씻어 빛을 낸 공적

제단입니다.

충렬사 제단 위에는 <충무공 신위>라고 쓰인 밤나무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늘 붉은 비단으로 싼 독(신조 함) 안에 모셔두다가 향사 때에는 함을 열게 된다고 합니다.

 

정참의 천장은 보, 도리, 서까래가 드러나는 연등천장인데 바로 위패 위쪽 한 평 정도의 크기의 소란반자(「井」자 무늬 널빤지)는 단청을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화려하게 칠하였습니다.

 

이충무공의 영정사진이 중앙에 있는데

이순신은 우람한 장군의 용모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말과 웃음이 적고 용모가 단정하여 근신하는 선비와

같았으나 안으로는 감기가 있었다.라고

고 유성룡의 <징비록>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 영정은 정형모 화백이 그린(1978) 영정으로 1991년 여기에 봉안하였습니다.

 

양옆으로는 팔 사도 병풍이 있는데

명나라 신종 황제가 조선과 중국을 구한 이충무공의 공적을 찬양하여 보낸 15점의 하사품을 신광호 제187대 통제사가 그려서(1861) 정침에 비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기왓장과 이끼들이 세병관의 세월을 이야기해주네요 ㅎ

이런 것들 또한 고풍스러워 보입니다.

나가는 길에 강한루에서 통영의 전경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많은 시인들이 시를 적었겠죠?

저도 글 재주가 있었다면.. ㅎㅎ

저 연기는 불이 난 게 아니라..

옛날에 기억나시나요?

소독차 ㅎㅎ 마을은 소독을 당하고 있었어요~!

저도 어릴 때 소독차 뒤를 따라가고 그랬는데 ㅋㅋ

아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위험했어요

호흡기에도 그렇지만 그 뿌연 곳을 막 달리면서

따라다녔으니까요? 어디 빠지기라도 했음

어쩔 뻔했을까요;;; 상상만 해도 아찔하네요;;;

충렬사를 나가는 길에는

음수대가 있습니다

진짜 사용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어요

제가 안 해 봤거든요 ㅎㅎ

다음에 가면 한 번 마셔볼게요 ^^

 

음수대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충렬사는 이렇게

마무리를 지어야겠습니다~!

 

블로그의 글이 좀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네요^^

충렬사를 다녀오시면서 가시는 코스로는

서피랑을 추천드리고 싶은데요?

서피랑에서 보는 통영시의 시티뷰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동피랑은 시끌벅적한 화려함이 있다면

서피랑은 조용한 서정적인 맛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참조: http://www.tycr.kr/installation.php

www.tyc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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